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브라질과 제3세계 영화의 물결: 시네마 노보의 저항적 주인공들

by goyo38 2025. 6. 2.

브라질 시네마 노보: 민중의 시선으로 재구성된 현실

시네마 노보(Cinema Novo)는 1960년대 브라질에서 등장한 영화 운동으로, 극심한 빈부격차와 독재 체제 속에서 억눌린 민중의 삶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할리우드식 서사나 브라질 대중영화의 판타지를 배격하고, 가난한 이들의 일상과 고통을 정면으로 응시했습니다. 글라우버 로샤(Glauber Rocha), 넬슨 페레이라 도스 산토스(Nelson Pereira dos Santos) 같은 감독들이 이 흐름을 주도하며 “카메라는 무기”라는 인식을 공유했습니다.

 

대표작으로는 글라우버 로샤의 <지옥에서 온 신(Deus e o Diabo na Terra do Sol, 1964)>이 있습니다. 이 영화는 종교적 신념과 반란의 이념 사이에서 흔들리는 민중의 운명을 다룹니다. 민중이 겪는 고난을 서사로 포장하지 않고, 거칠고 날것 그대로의 영상 언어로 전달하며 현실을 깨우는 정치적 메시지를 전합니다. 로샤는 "배고픈 민중은 예술을 모른다. 그들은 빵이 필요하다"는 발언으로 시네마 노보의 지향점을 집약적으로 표현했습니다.

 

이 운동은 제3세계 국가들이 처한 식민주의적 잔재와 신자유주의의 억압에 저항하는 상징이 되었습니다. 브라질 민중의 역사와 신화를 재해석하고, 일상 속에서 생존을 이어가는 인물들을 중심으로 세계를 다시 보게 만드는 힘을 가진 영화들이 쏟아졌습니다. 거칠지만 강렬한 영상미, 다큐멘터리적 현실 묘사, 비정형적 편집 등이 이 영화들의 스타일적 특징입니다.

아르헨티나 제3영화 운동: 억압에 맞선 집단 창작의 힘

아르헨티나에서는 페르난도 솔라나스(Fernando Solanas)와 오탕디오 게티노(Octavio Getino)가 1968년에 발표한 선언문 제3영화 선언을 통해 이 운동이 공식화되었습니다. 이들은 상업영화와 예술영화라는 기존 구분을 넘어, 대중이 현실을 깨달을 수 있도록 만드는 정치적 영화, 즉 '제3영화'의 필요성을 주장했습니다. 그들의 대표작 <불타는 시간의 시간(La hora de los hornos, 1968)>은 라틴아메리카의 식민주의, 군사독재, 자본주의 침투를 고발하는 세 시간짜리 다큐멘터리로 강한 충격을 주었습니다.

 

이 영화는 상영 형식부터 기존 영화의 틀을 벗어났습니다. 암실이나 극장이 아닌 공공장소나 학교, 노동조합 회의실에서 비공식적으로 상영되었고, 상영 후에는 반드시 관객과의 토론이 이어졌습니다. 영화는 단지 보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사유하고 변화를 모색하는 정치적 실천의 일부였습니다. 이러한 방식은 영화라는 매체가 어떻게 집단적 저항의 수단이 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제3영화는 단순히 국가 내부의 억압 구조를 고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세계 자본주의 시스템과 식민주의적 지배관계를 해체하는 시각을 공유합니다. 이들은 영화 제작과 상영, 소비의 모든 과정을 탈중심화하고, 작가 개인이 아닌 집단의 목소리를 중심에 두며 새로운 영화 미학을 구축했습니다. 이로써 아르헨티나의 제3영화는 단지 라틴아메리카만이 아니라 전 세계 저항 영화의 교본이 되었습니다.

아프리카의 탈식민 영화: 우스만 셈벤과 아프리카 시네마의 시작

아프리카 영화의 뿌리는 독립 이후 프랑스어권 서아프리카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세네갈 출신의 우스만 셈벤(Ousmane Sembène)은 종종 '아프리카 영화의 아버지'로 불립니다. 그는 노동자, 여성, 하층민의 시선을 중심으로, 서구의 시선에서 벗어난 아프리카 내부의 목소리를 영화로 표현했습니다. 그의 대표작 <부르 타이무르(Borom Sarret, 1963)>는 다카르의 마차꾼을 따라가며 도시 빈민의 현실을 날카롭게 포착합니다.

 

셈벤은 또 다른 작품 <엠타이(Moolaadé, 2004)>에서 여성할례라는 민감한 주제를 다루며, 전통과 인권 사이의 갈등을 통해 아프리카 사회의 변화 가능성을 제시합니다. 그는 글쓰기와 영화 만들기를 병행하며, 문맹률이 높은 사회에서 영화를 언어로 삼아 민중과 소통했습니다. 그의 영화는 서구 관객을 위한 해설이나 관습적 구조를 지양하고, 아프리카 내부의 시선과 리듬을 유지하려는 특징이 뚜렷합니다.

 

셈벤 이후 아프리카 각국에서도 다수의 독립영화들이 등장했습니다. 말리의 술레이만 시세, 모리타니의 아브데라흐만 시사코 같은 감독들이 서구 중심의 영화 담론에 대항하며 자국의 역사와 정체성을 영화로 재현해 왔습니다. 이들은 대규모 예산 없이, 국가나 국제기구의 지원, 공동체의 참여로 영화를 만들어내며 탈식민적 미학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아프리카 시네마는 여전히 제도적 장벽에 부딪히고 있지만, 독창적 언어와 시선으로 세계영화사의 중요한 축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