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적 주인공의 해체: 신뢰할 수 없는 화자의 부상
전통적 영화 서사에서 주인공은 흔히 확고한 동기와 일관된 성격을 가진 인물로 묘사됩니다. 하지만 포스트모더니즘 영화에서는 인물이 더 이상 진실을 전달하는 안정적인 매개체로 기능하지 않습니다. 대표적으로 데이비드 핀처의 <파이트 클럽>에서는 주인공 자신이 자신의 정체를 알지 못하고, 관객도 그의 서사를 믿을 수 없게 됩니다. 여기서 "신뢰할 수 없는 화자" 개념이 핵심입니다. 관객은 이야기의 진위를 끊임없이 의심하게 되며, 인물은 내면의 균열 속에서 복수의 정체성을 가집니다.
<메멘토>에서는 기억을 잃은 주인공이 시간의 흐름을 뒤집으며 진실에 다가가려 합니다. 하지만 이야기의 끝에서 그가 믿고 있던 진실이 허구임이 드러나며, 인물은 더 이상 현실을 인지할 수 없는 상태로 남습니다. 이러한 구조는 관객에게 더 이상 인물을 따라가는 것이 아닌, 인물 자체를 해체하며 의미를 재구성하도록 만듭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이렇게 인물의 통일성과 신뢰성을 무너뜨리며, 서사의 중심에서 그를 끌어내립니다.
이 변화는 주인공이라는 개념 자체를 의심하게 만듭니다. 더 이상 하나의 인물이 이야기의 중심에서 사건을 이끌지 않으며, 인물은 서사의 일부 요소일 뿐입니다. 이는 기존 할리우드 영화에서 보여주던 영웅적 캐릭터와는 확연히 다른 양상으로, 포스트모던 영화의 특징 중 하나로 자리 잡게 됩니다.
정체성의 유동성: 인물과 역할의 경계 흐리기
포스트모더니즘은 정체성이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사회적, 문화적 구성물이라고 봅니다. 영화 속 인물 역시 고정된 자아를 지닌 존재가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배우에 가깝습니다. <아다지오>나 <버드맨> 같은 영화에서는 배우가 맡은 배역과 현실의 자아가 뒤섞이며 인물의 경계가 무너집니다. 극 중 인물은 하나의 이름으로 정리되지 않고, 복수의 페르소나를 가진 존재로 제시됩니다.
리처드 링클레이터의 <스캐너 다클리>에서도 주인공은 자신이 누구인지 점차 잃어버리며, 사회적 감시체제 속에서 정체성이 해체됩니다. 이 과정에서 인물은 더 이상 개인적인 의지나 성격에 의해 움직이지 않고, 주변 구조의 작동 방식에 따라 위치가 바뀌는 객체가 됩니다. 정체성은 그 자체로 중심을 갖지 않으며, 영화는 이를 시각적으로 파편화된 화면 구성, 왜곡된 색채, 반복되는 장면들로 표현합니다.
이러한 방식은 특히 디지털 시대 이후 더욱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SNS나 아바타와 같은 디지털 자아의 등장은 영화 속 인물 해석에도 영향을 주었습니다. 캐릭터는 더 이상 내면의 진실을 탐색하는 대상이 아니라, 그 자체로 다층적인 마스크를 쓰고 등장하는 퍼포머로서의 성격을 지닙니다. 이는 극영화와 다큐멘터리의 경계마저 흐리게 만들며, 관객의 인물 이해 방식도 전환됩니다.
서사의 중심에서 구조의 요소로: 인물보다 시스템
포스트모더니즘 영화는 이야기 구조 자체의 실험을 통해 인물의 위상을 상대화합니다. 예컨대 크리스토퍼 놀란의 <인셉션>은 주인공의 감정 변화나 성장보다, 꿈이라는 복잡한 구조 속 규칙이 이야기의 핵심으로 작동합니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은 서사의 톱니바퀴 중 하나로 기능하며, 구조적 장치로 역할이 축소됩니다.
<클라우드 아틀라스>나 <트리 오브 라이프>처럼 다층적이고 다중적인 시공간 구조를 지닌 영화들에서는 인물들이 서로 다른 시공간에서 동일한 역할을 반복하거나, 이름만 다른 동일한 서사의 일부로 구성됩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인물의 감정보다는 시스템의 반복과 그 안에서 발생하는 의미의 배열입니다. 주인공은 더 이상 중심축이 아니라, 퍼즐 조각 중 하나가 됩니다.
이는 영화가 세계를 설명하는 방식의 변화이기도 합니다. 근대적 세계관에서는 인물이 세계를 해석하는 창구였다면, 포스트모던 영화는 세계 자체가 설명 불가능한 구조물임을 강조하며, 인물은 이를 통제하지 못하는 존재로 그려집니다. 이 전환은 관객으로 하여금 인물에 몰입하는 것이 아니라, 인물이 작동하는 전체 시스템을 읽게 만듭니다. 인물이 사라지고, 구조가 전면에 떠오르는 이 흐름은 현대 시네마에서 점점 더 일반적인 경향이 되고 있습니다.